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유럽 혁명 (문단 편집) === [[알바니아 인민 사회주의 공화국]]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d.ibtimes.co.uk/hoxha-albania-statue.jpg|width=100%]]}}}|| || {{{#000,#fff [[티라나]]에서 [[엔베르 호자]]의 동상을 무너뜨리는 시위대, [[1991년]] [[2월 20일]]}}} || 알바니아의 자유화 물결은 타 국가들보다 '''1년 늦게''' 찾아왔다.[* 루마니아조차 [[1989년]] 12월에 성공하여 [[1990년]]이 되기 전에 공산독재를 종식한데 비해 알바니아는 사실상 1990년 12월이 되어서 시위가 일어났으며 1991년에 독재자들로부터 벗어났다.] [[엔베르 호자]] 집권 후 벌인 폭압 정책은 알바니아를 [[동유럽]] 공산권 중에서도 매우 낙후된 경제 상황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1989년]] 당시 [[알바니아]]의 1인당 GDP는 겨우 723[[미국 달러|달러]][* [[차우셰스쿠]] 하에서 경제 붕괴 상태에 놓인 루마니아도 같은 해 1인당 GDP가 1,789달러였으니 알바니아의 경제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 수 있다.]에 불과해 동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특히 호자의 [[무신론]] 국가 선포 등의 극단적인 종교 탄압 정책과 외국인과의 대화 및 외국 문물 수입 금지 등의 고립 정책은 알바니아를 매우 억압적이면서 동시에 유럽에서도 가장 크게 뒤떨어진 국가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기조는 [[1985년]] 호자 사후 집권한 라미즈 알리아(Ramiz Alia, 1925~2011)에 의해 조금은 완화되었으나 기본적인 방향은 그대로였다. 이 같은 억압 및 고립 정책은 1989년 타 동구권 공산 정권, 심지어 루마니아의 공산 정권까지 무너지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같은 해 슈코더르(Shkodra)에서 이 같은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긴 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며 '''[[1990년]]'''에 들어서도 알리아를 위시한 집권 공산당은 타 국가들의 개혁 상황에서도 기존 [[스탈린주의]]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타 국가들의 소식이 음성적으로 알바니아 국내에 유통되기 시작했고 동구권의 개방 소식을 알던 국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져 갔다.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해를 넘긴 지 얼마 안 된 [[1991년]] [[2월 20일]] 수도 [[티라나]]에서 시민들이 엔베르 호자의 동상을 무너뜨리면서 절정에 달했다. 결국 알바니아 공산당도 굴복하여 같은 해 3월 [[1923년]] 이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 선거를 실시했다. 선거 결과 공산당이 승리하긴 하였으나 일당 독재를 유지할 수는 없었으며 이듬해 5월 다시 실시된 총선에서 공산당이 패하면서 동유럽 공산권 중에서도 최악의 폐쇄 정책을 펼친 알바니아 공산당은 정권을 잃었다.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타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알바니아는 극도의 사회 불안 및 궁핍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는 [[1997년]]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피라미드 사기 사건]]으로 국민의 대부분이 재산을 잃은 것에 대해 분노하여 일으킨 반정부 소요사태로 절정에 달했고 공산당에서 이름이 바뀐 [[알바니아 사회당|사회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다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알바니아]]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으며 현재는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